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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 빠진 날

김미카엘 2022. 4. 6. 11:26
♤ 귀 빠진 날
 
친구 생일
축하 모임을 가졌다
 
코로나도 있고 해서
한동안 어울리지 못했는데
 
친구들끼리 단톡방에서 이야기를 나누다
한 명이 귀 빠진 날이라는 걸 알게 됐다.
 
그렇잖아도 다들
마음은 주저주저하면서도
 
몸은 근질근질했는데
좋은 구실이 생긴 거다.
모처럼 모여 한잔 했다.
 
자연스레 생일에
대한 이야기가 오고갔다.
 
“아침에
미역국은 얻어 먹었냐”부터
 
“이제 우리 여생에
생일이 몇 번이나 남았을까”하는
 
쓸쓸한 대화까지 나누다
생각지 않게 많은 걸 깨닫게 됐다.
 
쓸데없이 한 친구가 물었다.
 
“생일을 왜
귀 빠진 날이라고 부르는지 알아?”
 
“그러게
코나 눈 빠진 날도 아니고,
 
왜 하필 귀 빠진 날이지?”
 
태아는
머리부터 세상에 나오는데
 
산모에겐 그때가
가장 힘들고 고통스러운 순간이다.
 
산부인과도 제대로 없던 시절,
시골집에서 순산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어머니들은 해산할 때
댓돌 위에 고무신을 벗어놓고
 
‘내가 다시 저 신을 신을 수 있을까’
하고 방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태아는 머리가
어깨 너비보다 크다.
 
그래서 일단
귀가 보이는 게 중요했다.
 
귀가 빠져나오면
몸통과 다리는 순조롭게 따라나오니
 
출산은 다 한 거나
다름없다고 한다.
 
한 친구가 진지하게 물었다.
 
“그래. 그런데 생일은
어머니가 가장 고생한 날인데
 
왜 생일 축하는
저희들끼리만 하지?”
 
결혼을 해서
아내가 아이를 낳는 걸 보며
 
생일의 주인공은
자기가 아니라는 걸 문득 깨달았다고 한다.
 
그 후 그는 생일에는
꼭 어머니 아버지에게
미역국을 끓여 드리거나
 
맛있는 걸 사드리고
선물을 드렸다고 한다.
 
아버지의 그런 모습을
보고 자란 그의 아이들도
 
자신의 생일에는
그렇게 따라 한다고 한다.
 
그 말을 듣고 나니
결혼 후
내 생일에 부모를 생각한 적이 있었던가.
 
어머니가 멀리 계시긴 하셨지만
아내와 아이들하고만
즐겁고 오붓하게 생일상을 먹었다.
 
어머니는
오히려 내 생일에는
 
가족과 좋은 데 가서 외식하라고
전화를 하시곤 했는데
 
난 정작 어머니에겐
스웨터 하나 선물한 적이 없다.
 
다른 때는 문안 전화를
곧잘 하면서도 막상 생일에는
 
“저를 낳느라고
얼마나 힘드셨어요”라는
감사 전화 한 번 한 적이 없다.
 
생일은
내 것인 줄만 알았다.
 
친구는 생일 아침에
미역국을 먹는 관습은
 
출산의 고통을 겪으며
생명을 주신 어머니의 은혜를
잊지 말라는 의미라고 말해줬다.
 
그래서 귀 빠진 날에는
자기가 미역국을 먹는 게 아니라,
 
귀를 빼준 어머니에게
미역국을 끓여드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 진위는 모르겠으나
귀는 귀퉁이에 붙어있어서
‘귀’가 됐다고 한다.
 
사람이 잘났다고 말할 때
 
왜 이목구비(耳目口鼻)가
반듯하다고 할까.
 
눈, 입, 코도 있는데
왜 귀(耳)를 앞세웠을까?
 
귀는 얼굴의 핵심 지점도 아니고
변방에 달려있는데도 말이다.
 
그건 그만큼 귀가
소중한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에
맨 앞에 간 거라고 한다.
 
늘 남과 세상에 귀를 기울이며
살아야 한다는 뜻이라고 한다.
 
‘귀엽다’는 단어는
남의 말을 잘 귀담아 듣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라는 우스개까지 곁들였다.
 
말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지만,
듣는 것은 가려들을 수는 없다.
 
듣는 것은
그래서 신의 뜻이라고 한다.
 
남이 내 험담을 할 때
‘귀가 가렵다’는 표현을 생각해 보라
 
입은 하나인데
눈과 귀가 두 개인 건,
 
말하는 것보다
듣고 보기를 두 배 하라는 의미라고 한다.
 
공자는 나이 60을
귀가 순해진다는 이순(耳順)이라 했다.
 
이는 원래 무슨 말을 들어도
그 이치를 깨달아 이해한다는 의미이지만,
 
무슨 말을 들어도
사사로운 감정에 얽매이지 않는
관용이 진짜 의미라고 한다.
 
선현들은 나쁜 말을 들으면
곧장 달려가 시냇물에 귀를 씻는다 했다.
 
난 이순의 나이가 넘었지만
그 경지에 언제나 도달할 수 있으려나.
 
늘 내 얼굴 귀퉁이에 붙어있지만
관심을 갖지 않았던 귀.
 
많은 걸 생각하고
깨닫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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