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사고로 몸의 55%에 3도 화상을 입고도 살아난 이지선 씨가 있습니다.
이지선 씨는 대학교 4학년 때 오빠와 차를 타고 신호대기를 하던 중 뒤에서
음주운전 뺑소니 차량에 사고를 당했습니다.
온몸에 화상을 입었고 의사도 포기한 상태였지만 기적적으로 살아났습니다.
그러나 사는 것이 더 큰 고통이었습니다.
40번의 수술을 해야 했으며, 진통제의 효과가 떨어지는 몇 시간 동안은
극도의 고통을 당해야 했고, 살이 오그라들어 눈과 입을 몇 달 동안 깜빡이거나
다물 수 없었습니다.
목의 살이 오그라들어 머리를 들어 하늘을 볼 수 없어서 목과 척추까지 휘어져야 했습니다.
이제 그녀는 정해야 합니다.
이 고통을 누구를 위한 것으로 만들지. 그녀는 하느님을 위한 고통으로 삼기로 했습니다.
목사님이 그녀에게
“자매님은 반드시 살게 될 것이고, 또 세상에 희망을 전하는 큰일을 하게 될 것”
이라는 말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 말씀을 믿으니 자신이 당하는 지금의 고통이 하느님의 뜻을 자신의 고통으로
이루도록 허락한 것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억지로라도 그렇게 생각해야 했습니다.
손가락이 곪아 8개를 잘라내야 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울고 있는 엄마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엄마, 더 많이 자르지 않아서 감사하지?”
이지선 씨는 “아주 작은 것에서부터 감사를 찾으려고 했다.”라고 말합니다.
사고를 낸 사람의 차가 보험에 들어 있어서 감사했고,
몇 달 만에 눈을 깜빡거릴 수 있게 되었을 때 감사했고,
손가락으로 글을 쓰고 숟가락을 들 수 있는 것에 감사했으며,
환자복의 단추를 혼자 힘으로 끼울 수 있어서 감사했고,
문을 열 수 있어서 감사했으며,
무엇 보다 살아있다는 것에 대해 감사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지금은 매우 행복해서,
‘진심으로’ 과거의 예뻤던 얼굴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없다고 당당히 말합니다.
나의 고통에 대한 보상을 주는 대상을 선택하는 방법은 결국 ‘감사’입니다.
나 자신에게 감사하면 나 자신이 보상을 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살다가는 중독자가 됩니다.
혹은 가족이나 나라에 감사하면 됩니다.
하지만 그것도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더 큰 보상을 위해 나아가거나, “이게 다야?” 하며 스스로 보상을 주려 할 것입니다.
결국 죄로 떨어지는 것입니다.
(신부님 묵상글중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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